기억의 천재 푸네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 作
나는 손에 칙칙한 빛깔의 <시계초>를 들고 있던 그를 기억한다. (나는 <기억한다>라는 이 신성한 동사를 입에 올릴 자격이 없다. 지구상에서 단 한 사람만이 그러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데 그 사람은 이미 죽었다.) 그는 한평생 내내 저녁부터 새벽까지 그 꽃을 보면서도 마치 세상의 그 누구도 본 적이 없는 꽃을 보는 듯 매번 그렇게 바라보고는 했다. 나는 그를 기억한다. 담뱃불 너머로 과묵하고, 인디언 같고, 그냥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얼굴, 난 마치 머리를 땋는 사람의 손처럼 길고 말랐던 그의 손을 기억한다(생각한다). 나는 그의 손 가까이에 있던 우루과이 군(軍) 문장이 새겨진 마떼 찻주전자를 기억한다. 나는 희끄무레한 호수의 풍경과 함께 그 집의 창문에 드리워져 있던 노란 발을 기억한다. 나는 그의 음성을 똑똑하게 기억한다. 오늘날의 이탈리아 사람들에게서 들을 수 있는 이사잇소리가 없는, 변두리 지역의 옛사람들이 쓰던 느리고, 한이 서려 있는 콧소리. 나는 그를 딱 세 번 만나봤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건 1887년이었다……. 난 그를 알았던 모든 사람들이 그에 관한 글을 썼으면 싶다. 아마 그 중 내 기록이 가장 짧고, 가장 보잘것없을 테다. 그래도 그건 당신들이 편찬하게 될 책들 중에서 가장 공정하지 않은 책은 아닐 것이다. 아르헨티나 사람이란 못마땅한 처지 때문에 우루과이에선 주인공이 우루과이인일 경우 꼭 채택해야 하는 장르인 <디띠람보> 형식을 쓸 수가 없다. 푸네스는 <배운 놈>, <양복쟁이>, <항구 놈>과 같은 모욕적인 단어들을 쓰진 않았다. 하지만 그가 나를 충분히 그런 재수없는 부류로 치부했을 것은 틀림없다. 뻬드로 레안드로 이뿌체는 푸네스를 가리켜 초인들의 선구자라고 했다. <야만적이고 원시적인 짜라투스트라.> 나는 그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가 몇가지 치유가 불가능한 단점들을 지녔던 프라이 벤토스의 촌놈이었다는 사실 또한 잊어선 안 된다.
나는 푸네스를 처음 만났던 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1884년 3월, 아니면 2월의 어느 오후에 나는 그를 만났다. 그해 내 아버지는 여름휴가를 보내기 위해 나를 프라이 벤토스로 데려갔다. 그 날에 난 사촌인 베르나르도 아에도와 함께 산프란시스코 목장에서 돌아오던 길이었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말을 탄 채 오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들떠 있었던 건 꼭 말을 타고 있단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찌는 듯 무더웠던 하루 끝에 거대한 흑판 빛깔의 폭풍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남풍이 폭풍을 부추기고 있었고, 나무들은 벌써 광기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텅 빈 들판에서 폭우를 만나게 될까봐 두려웠다(기다려졌다). 우리는 폭풍과 일종의 경주를 벌이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양쪽으로 높게 벽돌을 쌓아 만들어놓은 보도 사이 움푹 꺼져 내려가 있는 샛길로 들어섰을 때, 순식간에 날이 어두워졌다. 우린 윗 보도에서 울려오는 다급하고도 어쩜 신비스럽기까지 한 발자국소릴 들었다. 우리가 눈을 들어다 올려보자, 좁다라면서도 부서진 담벼락 그 위를 달리는 듯 좁다랗고 부서진 보도를 달려가고 있는 한 소년이 보였다. 나는 목동들이 입는 그 아이의 헐렁한 바지와 샌달을 기억한다. 나는 이미 끝없이 밀려드는 폭풍우를 등지며 달리는 그의 다부진 얼굴에 물려 있던 담배를 기억한다. 그리고 뜻밖에도 베르나르도는 그 아이에게 말을 걸었었다.
「지금 몇 시야, 이레네오?」 그 애는 하늘을 올려다보지도 않고, 걸음을 멈추지도 않은 채 답했다.
「8시 4분 전이야, 꼬마 베르나르도 후안 프란시스코」 그 애의 음성은 날카로웠고, 조롱기가 담겨 있었다.
그 때 나는 폭풍우 때문에 너무 정신이 없었다. 때문에 만일 나의 사촌이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조금 전에 언급했던 그들의 그 대화는 전혀 나의 주의를 끌지 못했을 거다. 내 사촌이 그렇게 한 건 (내 생각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과, 그 애가 자신을 놀리려고 제 이름을 세 부분으로 나눠 한 대답에 대해 전혀 개의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 의해서다.
사촌은 내게 오솔길에서 만난 그 아인 몇 기이한 행적을 하고 다니는 이레네오 푸네스라고 말해 주었다. 사촌에 따르면 그는 그 누구와도 만나려 하지 않는데다, 마치 시계처럼 항상 정확한 시간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곤 그 애가 마을에서 다리미질로 생계를 꾸려가고 있는 마리아 끌레멘띠나 푸네스라는 아낙의 아들이라고도 덧붙였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 애의 아버지가 고기 통조림 공장에서 일하던 오코너라는 이름의 영국인 의사라고 했고, 다른 사람들은 살또 지방 출신의 말 조련사, 또는 수색대원이라고 했다. 그는 라우렐 씨네 별장 모퉁이의 오두막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1885년과 1886년에 우리 가족은 몬테비데오에서 여름 휴가를 보냈다. 1887년에 나는 다시 프라이 벤토스로 왔다. 그리고 난 당연히 모든 친지들과 더불어 마침내 <시계 같은 푸네스>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리고 나는 그가 산 프란시스코의 목장에서 반쯤 길들인 야생마로부터 떨어져 절망스럽게도 전신마비 상태에 빠져 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느꼈던 이상야릇한 거북함을 기억한다. 내가 처음 그를 봤을 때 우리들은 산 프란시스코의 목장에서 돌아오던 중이었고, 그는 높은 곳을 걷고 있었다. 나의 사촌 베르나르도의 입으로부터 들은 사실은 본래 있던 이야기들을 각색해 꾸민 일종의 환상 같은 모습을 상당히 드러내고 있었다. 푸네스는 뒤뜰에 있는 무화과나무나 거미줄을 응시한 채 꼼짝 않고 제 침대에 누워 있다고 했다. 그는 밤이 되면 창가로 제 몸을 옮겨놓도록 했다. 그는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 말에서 떨어져 입은 타격이 오히려 더 잘됐다는 듯이 행동하곤 했다……. 나는 두 차례 창문 격자 너머 자리해있던 그를 보았다. 창의 격자는 영원히 갇히게 된 그의 처지를 잔혹하게 강조하고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미동도 없이 눈을 감고 있었다. 두번째 보았을 때 역시 미동조차 없었지만 대신 그는 향기로운 산토니카 나뭇가지를 하염없이 바라다보고 있었다.
그 때에 난 이미 일종의 허영심과 더불어 라틴어에 대해 체계적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내 짐꾸러미 안엔 로몽의 『저명 로마인들의 삶』, 끼체라의 『라틴어 시 용어 사전』, 줄리어스 시저의 주석집들, 그리고 37권으로 된 플리니의 『자연사』 중 한 권이 들어 있었다. 플리니의 이 책은 내 빈약한 라틴어 실력으론 감당하기 어려운 책이었다(갈수록 더 막막했다). 시골에선 그 어떤 비밀도 없는 법이다. 이레네오 역시 비록 마을 변두리의 오두막에서 살고 있지만 이 다양한 책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은 금세 전해들었다. 그는 내게 손수 쓴 인사치레로 가득 찬 편지 한 통을 보냈다. 그는 먼저 편지에서 <1884년 2월 7일>에 일어난 유감스럽게도 짧았던 우리들의 만남을 상기시켰다. 다음엔 1884년과 관련해 그 해에 사망한 나의 삼촌 그레고리오 아에도가 세운 혁혁한 공적에 대해서도 경의를 표했다. <당신의 삼촌은 이뚜자잉고 내 용맹스러웠던 전투에서 인간의 깊은 희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직 라틴어를 모르기에 사전을 빌려주길 원하며 내가 갖고 있는 라틴어 책들 중 한 권도 함께 빌려달라고 청하였다. 그는 전혀 흠집 없이 원래 상태대로 즉각 책을 돌려주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필체는 완벽하고, 문장은 아주 날카롭게 핵심을 추려내는 힘이 있었다. 그의 철자법은 안드레스 베요가 선호하는 그런 유형을 따라서 i 대신 y를, g 대신 j를 쓰고 있었다. 나는 처음에 이게 농담이겠거니 하고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내 사촌은 그 반대로, 이게 바로 이레네오의 특징이라고 단언하는 것이었다. 나는 난해한 라틴어를 단지 사전만으로 해결하겠다는 그의 환상을 깨부실 요량으로 끼체라의 『빠르나소로 가는 길』과 플리니의 책을 보냈다.
2월 14일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로부터 전보 한 통을 받았다. 전보엔 아버지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기> 때문에 곧바로 돌아오라고 적혀 있었다. 하느님 용서하세요. 급한 전보를 받은 주인공으로서 우쭐대는 마음, 전보에 적힌 <않다>라는 부정형과 <아주>라는 단정적인 부사 사이의 모순을 프라이 벤토스 사람들 모두에게 떠벌리고 싶은 심보, 남자답게 자제력이 강한 척하나 내 고통을 극적으로 만들고 싶은 유혹은 아마 스스로 아버지의 병에 대한 고통을 까마득히 잊어버리도록 만들었는지도 몰랐다. 짐을 꾸리던 나는 『빠르나소로 가는 길』과 플리니의 『자연사』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토성>호는 다음날 아침 출항할 예정이었다. 그 날 밤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는 푸네스의 집으로 갔다. 나는 밤도 낮처럼 찌는 듯 덥다는 사실에 몹시 놀랐다.
그 단아한 집에선 푸네스의 어머니가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내게 이레네오는 뒷방에 있는데 불이 꺼져 있더라도 놀라지 말아달라고 했다. 이레네오는 불을 켜지 않은 채로 긴 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란다. 나는 작은 행랑마냥 바닥에 돌이 깔린 길을 따라 후원을 가로질렀다. 두번째 후원에 도착했다. 포도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때문인지 어둠은 더욱 칠흑 같았다. 문득 나는 이레네오의 빈정거리는 듯한 큰 목소리를 들었다. 그 목소리는 라틴어로 말하고 있었다. 굉장히 괴롭거나 슬픈 듯하면서도 들뜬 그 목소린(어둠속에서 들려오는) 연설문, 아님 기도문, 또는 주문을 외고 있는 것 같았다. 지상의 후원에서 로마어 음절들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난 점차 이 모든 게 이해하기 어려워지면서, 더 나아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후에 나는 그날 밤 그와 나눈 긴 대화를 통해 그건 『자연사』 7권 24장의 첫 단락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 장의 주제는 <기억>에 관한 것인데, 마지막 문구는 <때문에 한 번 들었던 것을 정확하게 반복할 수는 없다>였다.
목소리의 억양은 전혀 바뀌지 않은 채 이레네오가 들어오라고 말했다. 그는 침대 위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는 새벽이 되기 전까진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일정한 반복으로 빨갛게 타오르던 담뱃불이 기억난 듯하다. 방에선 어렴풋이 눅눅한 냄새가 났다. 나는 앉았다. 그리고 난 전보에 관한 얘기와 아버지의 병환에 대해 말했다.
드디어 난 내 이야기의 가장 난해한 지점에 이르렀다. 이 부분은 (독자들이 이미 눈치를 챘다면 좋겠지만) 반세기 전에 있었던 대화 그 자체와 다름없다. 나는 절대 원상태로 복원이 불가능한 그 대화를 그대로 옮기려 하진 않을 것이다. 나는 이레네오가 말했던 많은 것들을 왜곡 없이 그대로 요약하고자 한다. 물론 타인의 말을 대신 인용할 경우엔 언어의 차이에 대한 거리감도 생길 뿐더러 효과도 덜하다. 이 경우엔 나는 내 이야기의 효과가 죽어버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독자들은 그날 밤 나를 압도했던 말로 표현하기도 힘든 그런 순간들을 스스로 상상해내야 할 것이다.
이레네오는 우선 라틴어와 스페인어로 『자연사』에 기록돼있는 놀랄 만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들의 예를 열거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의 왕 시루스, 그는 제 모든 병사들의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미트리다테스 에우파토르, 그는 자신의 제국에서 사용되는 스물두 개의 언어로 법을 집행했다. 시모니데스, 그는 기억술의 창시자였다. 메트로도루스, 그는 한 번 들은 것은 똑같이 반복하는 능력을 뽐냈다. 이레네오는 아주 진지하게 이런 예들이 정말 경이롭지 않냐고 감탄했다. 그는 청회빛의 말이 자신을 내동댕이치기 전, 비가 내리던 그 당일 오후 이전까진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일종의 소경, 귀머거리, 얼간이, 건망증환자. (난 이전에도 그가 시간과 고유명사들을 정확히 기억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19년 동안 마치 꿈을 꾸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보면서도 보지 않고, 들으면서도 듣지 않고, 그래서 모든 것, 거의 모든 것을 잊어버렸다. 말에 떨어진 그는 의식을 잃었다. 정신이 든 이후부턴 견디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도 풍요롭고, 예민해져 버렸다. 오죽하면 정말 오래되고, 가장 사소한 일들까지도 기억이 났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그는 자신이 전신마비 사태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전혀 개의치는 않았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정도야 아주 작은 댓가에 불가하다고 판단한 것이다(느낀 것이다). 이 때 그의 지각력과 기억력은 완벽해졌다.
우리는 한 번 쳐다본 뒤에야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세 개의 유리컵을 지각한다. 그러나 푸네스는 포도나무에 달려 있는 모든 잎사귀들과 가지들과 포도알들의 수를 그냥 지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1882년 4월 30일 새벽 남쪽 하늘에 떠 있던 구름들의 형태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기억 속에 있는 그 구름들을 딱 한 번 본 스페인식 책 겉표지에 있던 줄무늬들과 께브라초 무장 항쟁이 일어나기 전날 밤 네그로 강에서 노가 일으킨 물결들의 모양에 비교할 수 있었다. 이런 기억들은 간단한 게 아니었다. 각각의 시각적인 이미지는 근육, 체온 등에 얽힌 이미지들과 이어져 있다. 그는 꿈과 비몽사몽한 상태 사이의 일들을 모두 되살려낼 수 있었다. 그는 두어 차례 하루 전체를 되돌이켜 보곤 했었다. 전혀 머뭇거리지도 않았지만 그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꼬박 지나갔다. 그는 내게 말했다.
「제가 혼자 갖고 있는 기억이 세상이 생긴 이래 모든 사람들이 가졌을 만한 기억보다 더 많을 거예요.」
그리고 더불어 말했다.
「제 꿈은 마치 당신들이 깨어 있는 상태와 똑같아요.」
그리고 새벽이 가까워질 즈음 또 말했다.
「제 기억력은 마치 쓰레기 하치장과도 같지요.」
칠판에 그려놓은 원, 직각삼각형, 마름모 같은 것들은 우리가 완벽하게, 그리고 바로 인지할 수 있는 그런 형상들이다. 다만 이레네오가 가진 형상은 말의 곤두선 갈기들, 언덕 위의 가축떼, 다른 모양으로 바뀌는 불길과 여기에서 셀 수 없이 많이 날리는 재들, 긴 밤 임종의 시간동안 수없이 바뀌는 망자의 얼굴 같은 것들이었고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났다. 난 그가 하늘을 보며 얼마나 많은 수의 별들을 헤아렸는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이런 것들을 그는 말했다. 그리고 이때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나는 그 모든 것에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 당시엔 영사기나 축음기가 없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푸네스를 실험해보려 하지 않았다는 게 이상한데, 이건 심지어 믿어지지도 않는다. 다만 확실한 건, 우린 미룰 수 있는 것들은 모두 미루면서 살고 있다는 거다. 우리는 모두 은밀하게 우리가 영원히 죽지 않고 살면서, 머지않아 모든 사람들이 많은 일을 하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될 거라는 걸 의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둠 속에서 푸네스의 목소리는 계속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1886년에 이르러 자신만의 독창적인 숫자를 고안해냈고, 며칠 되지 않아 셈의 부호들은 2만 4천개를 넘어섰다고 했다. 그는 일단 한 번 생각을 하면 절대 잊지 않아서 그것을 굳이 따로 적어놓진 않았다. 따라서 제일 먼저 이런 숫자 체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는 33인의 우루과이 독립 투사들을 지칭할 때 이뤄지는 단 하나의 단어와 단 하나의 숫자 체계 대신, 두 개의 숫자 체계와 세 개의 단어가 요구된다는 불만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이 다음 그는 이런 황당하기 짝이 없는 원리를 다른 숫자에도 적용했다. 7,013 대신 (예를 들어) 막시모 뻬레스라고 했다. 7,014 대신엔 <철도>라고 했다. 다른 숫자들의 이름을 더 들어보자면 <루이스 멜리안>, <올리마르>, <유황>, <고삐들>, <고래>, <가스>, <주전자>, <나폴레옹>, <아구스띤데 베디아>가 있다. 그는 500 대신 9라고 했고, 각 단어는 하나의 특별한 기호를 가졌다. 일종의 부호 같은 것인데 마지막 차례의 것들은 보다 더 복잡했다……. 나는 이런 뒤죽박죽인 용어들의 랩소디가 숫자의 체계완 정말 상반된다는 점을 말하고자 했다. 난 그에게 365란 숫자는 <네그로 디모테오>, 또는 <육포> 같은 단어들에선 발견되지 않는 보다 세밀한 요소들이 숨겨져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푸네스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또는 이해하길 거부하는 듯했다.
17세기에 로크는 각각의 사물, 돌, 새, 나뭇가지마다 고유한 이름을 가질 수 있도록 하나의 불완전한 언어를 임시로 지정했다(거부했다). 푸네스는 한 때 이런 비슷한 류의 언어를 계획했다. 하지만 그는 이 계획이 지나치게 막연하고, 또 너무 모호해서 결국 작업을 포기했다. 본래 푸네스는 모든 숲에 있는 모든 나무들의 모든 나뭇잎들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 모든 것들을 자각했을 때와 그걸 다시 되새긴 모든 순간들까지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과거의 모든 나날들을 7천 개의 기억으로 축약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런 다음 그는 기호들을 갖고 기억들을 정의해보고자 했는데, 결국 두 가지 이유가 그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 작업은 끝이 없을 것이란 생각, 그리고 죽을 때까지 이 작업을 한다 해도 어린시절의 모든 기억들을 분류하는 것조차 끝내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내가 언급했던 두 가지 계획(모든 자연수에 대한 끝이 없는 단어 만들기, 모든 기억의 영상들을 분류해놓은 쓸데없는 정신에 대한 목록)은 황당하고도 어이없는 일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아이러니하게 위대해보이기도 한다. 이 계획들은 실제로 우리가 푸네스의 현란한 세계를 조명하거나 추측해볼 수 있도록 한다. 우리들은 푸네스가 평범한, 그러니까 플라톤이 할 법한 생각들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는 <개>라는 종목별 기호가 다양한 크기와 여러 모습을 가진 수많은 각각의 개들을 포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또한 그는 (옆에서 봤을 때) 14의 3에 있는 개와 (정면에서 봤을 때) 4의 3에 있는 개가 왜 똑같은 이름을 가져야 하는지 골머리를 앓았다. 그는 거울을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이는 자신의 얼굴과 두 손 때문에 화들짝 놀라기 일쑤였다. 스위프트에 따르면 릴리풋의 황제는 미세한 손의 움직임을 분간할 수 있다고 한다. 푸네스는 쉴새없이 곪는 상처와 썩는 이빨과 피로감이 고요하게 밀려오는 과정을 구분했다. 그는 죽음이 이뤄지는 과정이나 습기가 차오르는 하나하나의 순간들을 보았다. 그는 다형적이고 순간적이고 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한 세계에 대해 고독하고도 명백하게 증명하는 관찰자였다. 바빌로니아, 런던, 그리고 뉴욕은 자신들이 가진 잔혹한 현란함으로 사람들의 상상력을 압도해왔다. 인파가 넘치는 그 모든 곳에 자리한 건물이나 사람들이 바삐 지나다니는 큰길같은 데에선, 황량한 남아프리카의 한복판에서 밤낮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이 불행한 이레네오에게 모여드는 것처럼 느끼지는 것과 같은 어떤 현실의 열기나 압박감을 아무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잠에 들기가 힘들었다. 잠을 잔다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과 같았다. 결국 간이침대에 등을 누인 채 푸네스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한없이 정밀한 집들의 틈새와 골격 하나하나를 새겨보았다. (계속해서 말하건대 그의 기억들 중 가장 사소한 것조차도 그에겐 육체적인 즐거움이며, 우리가 느끼는 육체적인 고통에 대한 것보다 훨씬 정밀하고 훨씬 생생하다.) 마을의 동쪽, 아직 경계가 나눠져 있지 않은 지역엔 푸네스가 보지 못한 몇 채의 새로운 집들이 있었다. 푸네스는 그것들을 똑같이 어둠으로 만들어진 검고도 아담한 집들로 상상했다. 왜냐면 그는 줄곧 그쪽으로 얼굴을 돌려놓고 잠에 들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그는 자신이 강바닥에서 늘 물살에 흔들리다가 휩쓸려가는 상상을 하곤 했다.
그는 전혀 힘들지 않게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라틴어를 습득했다. 하지만 난 그가 무던하게 생각하고 궁리할 수 있을지 줄곧 의심이 들었다. 사고한다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며, 또 평범한 것으로 만들어 개념을 정의시키는 것이다. 푸네스의 풍요로운 세계엔 그저 대부분 즉흥으로 인지되는 세부적인 것들밖엔 없었다.
새벽의 세밀하고도 빈틈 없는 빛이 지상의 정원에 찾아들었다.
그제야 난 밤새 내게 말을 한 목소리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레네오는 열아홉 살이었다. 그는 1868년에 태어났다. 그는 마치 청동상처럼 오래토록 기념할 만한 인물처럼, 이집트보다 더 오래되고 예언 및 피라미드들보다 앞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내가 했던 한 마디 한 마디가 (내가 했던 몸짓 하나하나가) 그의 완고한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거라 생각했다. 나는 괜스레 쓸데없는 몸짓들을 키우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두려움에 가마득한 현기증을 느꼈다.
이레네오 푸네스는 1889년 폐울혈로 세상을 떠났다.
1판 41쇄 펴냄 2011년 3월 18일 민음사 픽션들 內
주의. 오래 전 옮겨 놓은 단편이라 내가 바꿔 써놓은 문장들이 있을 수 있다.
'art'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詩 <세상사> (0) | 2022.02.11 |
---|---|
모리스 블랑쇼 문학비평 <바깥, 밤> (0) | 2022.02.11 |
권혁웅 시집 <소문들> 중 몇 가지 (0) | 2022.01.26 |
앙드레 지드 장편 <좁은 문> 1장 (0) | 2022.01.26 |
신기섭 詩 <봄눈> (0) | 2022.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