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 2부 ― 시인들에 대하여 · 224p
민음사 세계문학전집-094
프리드리히 니체 作 · 장희창 옮김
"내가 내 몸에 대해 더 잘 알게 된 이래로," 하고 차라투스트라가 한 제자에게 말했다. "나에게 있어서 정신은 다만 정신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모든 불멸의 것, 그것도 다만 비유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저는 선생님께서 전에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라고 제자가 대답했다. "그때 선생님은 이렇게 덧붙이셨지요. '하지만 시인들의 거짓말은 지나치다.'라고 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왜 시인들이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고 말씀하셨는지요?"
"왜냐고?" 하고 차라투스트라가 말했다. "자네는 '왜'라고 묻는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왜'라고 물어도 되겠지. 하지만 나는 그런 자들과는 다르네.
나의 체험이란 게 기껏 어제부터 시작된 것이란 말인가? 아닐세. 내가 내 견해의 근거들을 체험한 것은 훨씬 전부터의 일이지.
그러므로 내가 이 근거들을 간직하고 있으려면, 나는 기억을 저장하는 통이 되어버리지 않겠는가?
나의 견해 자체를 간직하는 것조차 내게는 벌써 버거운 일일세. 그리고 사실 날아가버린 새도 적지 않을 걸세.
그리고 나의 비둘기 집을 들여다보면 다른 곳에서 날아온 낯선 새도 이따금 보이는데, 그놈은 내가 손을 대기만 해도 몸을 부르르 떨지.
그런데 차라투스트라가 예전에 자네에게 무슨 말을 했다고? 시인들의 거짓말이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고? 하지만 차라투스트라 또한 시인이라네.
지금 자네는 차라투스트라가 그렇게 말했을 때 진실을 말했다고 생각하는가? 왜 자네는 그 말을 믿는가?"
제자가 대답했다. "나는 차라투스트라를 믿습니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머리를 가로 저으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말했다. 믿음은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더욱이 나에 대한 믿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아주 진지하게 시인의 거짓말이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면 그의 말은 옳다. 사실 우리는 거짓말을 너무 많이 한다.
또한 우리는 아는 것도 너무 적고 배우는 데도 서툴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시인들 중에서 자신의 포도주에 다른 것을 섞지 않는 자가 있을까? 사실 우리들의 지하 포도주 창고에서는 해로운 혼합이 자주 이루어졌다. 거기서 말로 할 수 없는 온갖 일들이 일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앎이 보잘것없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진심으로 우리 마음에 든다. 젊은 여자들인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그리고 늙은 여자들이 밤마다 이야기해 주는 것들마저도 우리는 애타게 갈망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은 이것을 우리들에게 있어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무언가를 배우는 자들에게는 봉쇄되기 마련인 지식에 이르는 특별한 비밀의 길이라도 있는 것처럼, 우리는 군중과 그들의 지혜를 믿는다.
하여간 모든 시인들은 믿고 있다. 풀밭에 혹은 고독한 산비탈에 누워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자는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여러 사물들에 대해 무언가 알게 된다고.
그리고 부드러운 흥분이 찾아오면, 시인들은 언제나 자연 자체가 자신들과 사랑에 빠졌다고 믿는다.
그리고 자연이 자신들의 귀에 은밀한 말과 감미로운 사랑의 밀어를 속삭인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죽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자들 앞에서 이것을 자랑하고 뽐낸다.
아, 하늘과 땅 사이에는 오직 시인들만이 꿈꿀 수 있었던 많은 것들이 있도다!
하늘 위에서는 특히 그렇도다. 왜냐하면 모든 신은 시인들의 비유이며 시인들의 궤변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우리는 언제나 천상으로, 즉 구름의 나라로 이끌려 올라간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구름 위에 알록달록한 껍데기들을 벗어놓고는 이것들을 신이나 초인이라고 부른다.
이것들은 여기 구름 위에 앉아 있기에 족할 만큼 충분히 가볍다! 이 모든 신들과 초인들은.
아, 어떻게든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되고 있긴 하지만 손에 닿지도 않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나는 얼마나 지쳤는가! 아, 나는 정말로 시인들에게 신물이 났다!
차라투스트라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의 제자는 화가 났으나 침묵을 지켰다. 차라투스트라도 말이 없었다. 그의 눈은 머나먼 곳을 바라보기라도 하듯 자신의 내면으로 향해 있었다. 마침내 그는 한숨을 쉬고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그러고 나서 그가 말했다. 나는 오늘에 그리고 옛날에 속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나의 내면에는 내일과 모레와 장래에 속하는 것이 들어 있다.
옛 시인이든 오늘의 시인이든 나는 시인들이라면 지쳤다. 그들 모두가 내게는 껍질이며, 얕은 바다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의 생각은 충분히 깊지 못했다. 그들의 감정은 심연에까지 가라앉지 못했다.
약간의 육체적 쾌락과 약간의 권태. 이것이 지금까지 그들의 최선의 사색이었다.
그들이 타는 하프 소리는 나에게는 모두 유령의 숨결, 유령이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로 들린다. 그들은 음향의 열정에 대해 지금까지 무엇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들은 내가 보기에 충분히 순결하지도 못하다. 자신들의 바다가 깊어 보이게 하려고 그들은 모든 물을 흐려놓는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기꺼이 화해하는 자로 행동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들은 중개인이고 혼합하는 자이며 어중이떠중이 불순한 자에 지나지 않는다!
아, 나는 그들의 바다에 나의 그물을 던지고 좋은 고기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나의 손에 들어온 것은 언제나 그 어떤 낡은 신의 머리뿐이었다.
굶주린 자에게 바다는 이와 같이 돌덩이 하나를 주었다. 아마 사인들 자신도 바다에서 태어났으리라.
물론 사람들은 그들에게서 진주를 발견한다. 그만큼 시인들 자신은 단단한 조개껍질과 닮았다. 다만 나는 시인들에게서 영혼 대신 소금에 전 점액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들은 또한 바다로부터 허영심도 배웠다. 바다야말로 공작들 중의 공작이 아닌가?
바다는 물소들 가운데 가장 흉한 물소 앞에서도 그 꼬리를 길게 펼친다. 바다는 결코 지치는 법도 없이 은과 비단으로 자신의 기다란 부채를 만든다.
무뚝뚝하게 이 모습을 바라보는 물소의 영혼은 모래사장과 닮았다. 덤불과는 더욱 닮았다. 그러나 늪과 가장 닮았다.
아름다움이라든지 바다라든지 공작의 장식 따위가 물소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이 비유를 시인들에게 말한다.
참으로 그들의 정신 자체가 공작들 중의 공작이며 허영의 바다가 아닌가!
시인의 정신은 관객을 원한다. 그것이 비록 물소일지라도!
그러나 나는 이 정신에 지쳤다. 나는 이 정신 자체가 자신에게 지치는 때가 다가오는 것을 본다.
나는 시인들이 이미 변하여 이제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정신의 속죄자들이 오는 것을 보았다. 속죄자들은 시인들로부터 성장했던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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