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2/02, 6:40 오후
20대에 할 수 있는 이야기란 시덥잖은 연애담, 혹은 연예인, 취업이나 스펙 걱정, 자급자족의 폐해 등.
그런 20대를 사는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란 내 나이에 지녔던 고민들과 그걸 풀어내고 있는 경험담 정도. 그것 말곤 뚜렷하게 내세울 말이 없다.
그 말을 어떻게 내뱉어야 할지 침대를 뒹굴거리며, 닥터후를 복습하며, 덕수궁 돌담길을 산책하며, 버스를 타며, 홍차를 우리며 생각했다.
찻잔에 든 물이 붉게 변할 때마다 빨간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침대를 뒹굴거릴 때마다 그 날 꾼 꿈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게 내가 가진 단편이었다.
생각이란 단편은 아주 짧고 강해서 때때로 우울이나 행복이란 과감한 단어로 명명되기도 했다. 그런 정의가 과연 좋은 일일까 생각했다.
이름을 가진 것들은 그것으로 존재를 드러내기에 행복할 수 있었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은 좀 더 그럴싸한 포용을 필요로 했다.
나는 정의된 사람으로서 내 스스로에 대해 만족하는지 생각했다. 나는 나의 이름을 사랑한다. 나는 나의 가족을 사랑한다.
그러나 사회는 나의 이름을, 나의 가족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고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들에게 사랑은 남녀가 전부였다.
왜 사랑은 빨간색으로 표현되는지 생각했다. 빨갛게 사랑하는 건 어쩌면 두렵기까지 했다.
불이 꺼지고 어둠이 찾아오는 장면을 상상했다. 아직도 생생한 전날의 악몽이 불쑥 온몸을 덮치는 반복을 겪었다. 끔찍했다.
그러므로,
파랗게 사랑하자 파랗게. 파란 바람, 파란 잎가지가 찰랑거리는 봄날처럼.
그 날에 파란 수의를 온몸에 감싼 열여덟 아이들의 파란 살결, 파란 머리칼이 생생하도록. 생을 기억하는 가족의 파란 눈물이 빨갛게 되지 않도록.
파랗게 사랑하자 파랗게. 내 갈라진 손등에 피어오르는 핏빛이 파란 바람, 파란 잎가지에 씻기는 아침처럼.
매일 낮이 되는 순간 마주하는 당신의 파란 살결, 파란 머리칼이 가장 아름답도록. 당신의 파란 목소리가 전날의 악몽을 잊어버리게.
白日莫虛渡 靑春不再來 백일막허도 청춘부재래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 말라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옥중에서, 안중근 의사)
청춘이란 단어가 아주 부끄럽게만 여겨지지 않고 문득 스쳐 보내기 아쉬울 정도로 자란 때부터 파란 봄에 대해 생각했다.
파란 것들이 피어나기 위해 꿈틀거리는 동안 더러는 지쳐 죽고, 더러는 견디며, 더러는 평안히 성장해가는 봄이 있었다.
다시 오지 않을 파란 봄에 죽는 것들과, 견디는 것들과, 평안한 것들.
이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다짐했다.
청춘에 대한 설명은 이것으로 시작되었다.
*verde [스페인어, 형용사]
1. 녹색의, 초록빛의, 초록색의, 풀빛의
2. (명사 앞에서) 푸른, 녹색의, 초록빛의
3. (사람이) 경험이 없는, 미숙한, 서투른
4. 어린, 젊은
로르카의 시 <악몽의 로맨스>에서 차용.
― 파랗게 사랑해 파랗게. verde que te quiero ver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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