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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산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중에서, 나 
 
  오늘은 치과에 가서 이를 하나 뽑았습니다. 뽑힌 이를 큰 포르말린 유리병에 넣더군요. 언제부터 모은 건지 두어 됫박은 족히 됨직한 그 많은 이빨들 속에 내 이빨을 넣고 나니 마음이 좀 답답합니다. 지난번에는 이가 좀 흔들거리길래 실로 묶어 내가 직접 뽑았죠. 호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다 운동시간에 십오 척이 넘는 담 밖으로 던졌습니다. 내 몸 일부의 출소였죠. 나는 징역을 사는 동안 풍치 때문에 참 많은 이빨을 뽑았습니다. 더러는 치과의 그 유리병에 넣기도 하고, 더러는 교도소 땅에 묻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교도소 담 밖으로 내보내기도 했죠. 난 이빨뿐만 아니라 산다는 그 자체가 곧 우리들의 심신의 일부를 여기저기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나누어 묻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심한 한마디 말에서부터 피땀어린 인생의 한 토막에 이르기까지, 친구의 마음 속에, 혹은 한 뙈기 전답 속에, 타락한 도시의 골목에, 역사의 너른 광장에 저마다 묻으며 살아가는데 내 경우는 많은 부분을 교도소에 묻은 셈이죠. 답답합니다. 우리 사회, 우리 시대와 가장 끈끈하게 맺어 있고 사회의 모순 구조와 직결된 공간이라고 믿으면서도 교도소에 묻은 나의 이 십여 년의 세월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건 역시 교도소가 그렇게 만만치만은 않은 곳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묻는다는 것이 파종임을 확신치 못하고, 나눈다는 것이 팽창임을 깨닫지 못하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나의 소시민적 잔재가 치통보다 더 통렬한 아픔이 돼 나를 찌릅니다. (書簡)

신영복 작


* 백세개의 모노로그(청하.1990.최형인 엮음)에서 발췌.